…5년 임무가 시작된 후 여러 차례의 탐사 경험으로 스팍은 커크를 혼자 두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스팍은 이것만 확인한 후, 빨리 그를 쫓아야겠다고 생각하며 바닥에 시선을 집중했다. 차츰 수면이 잔잔해지고 미미한 빛을 받은 바닥이 우둘투둘한 표면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임시 명명 SOF-1. 스팍과 커크가 탐사를 내려간 그 행성 표면은 수많은 꽃들이 지평선을 뒤덮고 있었다. 지구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일반적인 꽃들을 비롯해 척박한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각종 외계의 꽃들이 가득했다. 특이한 취미를 지닌 우주의 갑부가 별 전체를 개인의 화원으로 꾸미기라도 한 걸까. 진한 향을 토해내는 꽃들의 환영 인사에 스팍은 미미하게 눈살을 찌푸렸다. 감각이 예민한 스팍에게는 취할 정도로 독한 향기였다. 스팍은 고개를 털어 그들의 손길을 단호하게 걷어냈다.
엔터프라이즈에서 관측한 결과로는 행성의 약 90%가 물이라는 소견만 있었을 뿐, 이렇게 많은 식물이 있다는 사실은 분석된 바가 없었다. 즉 그 원인을 알아낼 필요가 있다는 뜻이었다. 스팍은 주변을 돌아다니는 커크를 몇 초 간격으로 주시하며 행성을 전체적으로 훑었다. 표면적으로 관측 결과는 타당했다. 그가 딛고 있는 대지는 –그것을 대지라 말할 수 있다면– 물로 얕게 덮여 있었다. 겉으로만 본다면 물 위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이럴 줄 알았으면 술루도 데려오는 건데. 그치?”
먼데서 커크의 목소리가 울렸다. 스팍의 발을 중심으로 잔잔한 파동이 퍼져나갔다. 지금이라도 그를 부르시는 것은 어떻습니까, 스팍이 제안하며 천천히 몸을 굽혔다. 거의 한쪽 무릎이 젖을 정도로 몸을 낮추자 투명한 물 아래로 짙은 초록색 바닥이 보였다. 스팍은 작은 병을 꺼내 이 행성의 물을 먼저 담았다. 정체가 완전히 확인되기 전까지는 피부에 닿지 않도록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스팍은 조금 더 자세히 바닥을 살폈으나 자신의 작은 움직임에도 물결이 일어 바닥의 모습이 제대로 투사되지 않았다. 어렴풋이 스팍은 바닥이 어떠한 모양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판단했다. 스팍은 한 번 더 입을 열었다.
“술루 대위를 부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커크는 꽤나 멀리까지 갔는지 대답이 없었다. 평소와 같았다. 관측 결과 이동성 토착생명체가 발견되지 않아 그리 위험하진 않을 테지만, ‘미지(Unknown)’라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불특정한 위험을 내포하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5년 임무가 시작된 후 여러 차례의 탐사 경험으로 스팍은 커크를 혼자 두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스팍은 이것만 확인한 후, 빨리 그를 쫓아야겠다고 생각하며 바닥에 시선을 집중했다. 차츰 수면이 잔잔해지고 미미한 빛을 받은 바닥이 우둘투둘한 표면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
바닥에 나타난 것은 휴머노이드 종족의 얼굴 전면이었다. 시체를 그대로 눕혀놓은 것처럼 온전한 모양이었다. 스팍은 깜짝 놀라 벌떡 일어섰다. 위험했다. 자신의 직감이 위험신호를 알렸다. 여기서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야했다.
“짐?”
스팍은 자신을 덮쳐오는 불안감에 재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그런데 함장은, 제임스 커크는, 그 어느 곳에도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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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를 지를 새도 없었다. 어느새 다가온 질긴 넝쿨이 얼굴을 옭아매고 목을 졸랐던 탓이다. 켁, 켁, 몇 번 작게 기침하자 두꺼운 줄기가 파고들어 완전히 입을 틀어막았다. 커크는 입을 다물지도 못하고 가없는 신음만 끅끅 흘렸다. 스팍에게 도움을 요청하려 했지만, 이미 대지가 그를 반쯤 삼킨 채였다. 몸부림을 칠 때마다 얇고 거친 줄기들이 거미줄처럼 사지에 달라붙었다. 도저히 벗어날 수가 없었다. 커크는 마지막으로 스팍의 뒷모습을 눈에 담고 서서히 별의 심장으로 침잠했다.
암록색의 대지 아닌 대지는 잔뜩 물을 머금은 늪과 닮아 있었다. 잠깐 빛이 들어온 수면 아래에서 커크는 아주 큰 ‘어둠’이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고 생각했다. 자신을 삼킨 별은 커크가 빠져들며 생긴 구멍을 다시금 두터운 줄기로 메웠고 덕분에 시야는 다시 어두워졌다. 마치 눈을 가린 양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커크는 끝까지 숨을 참았지만, 결국 몇 분을 버티지 못하고 호흡을 포기했다.
기포가 자신의 이마를 스치고 수면을 향해 질주했다. 그와 동시에 커크의 얼굴을 뒤덮고 있던 줄기 중 하나가 그의 뒷목을 가시처럼 파고들었다. 전신을 번개같이 훑어내는 감각에 소리를 내질렀지만, 물은 그의 비명마저 먹어 버렸다. 죽기 살기로 버둥거리던 커크는 서서히 정신을 잃으며 저항을 그쳤다. 얇은 넝쿨은 커크의 척수에 뿌리를 내리며 더욱 스스로를 공고히 했고 더욱 깊은 데에 있던 식물들 또한 짙은 줄기를 뻗어 그를 반겼다. 검은 꽃잎이 피어올랐다.
커크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두껍고 까슬까슬한 줄기들이 옷 속을 파고들며 자신을 단단히 옭아맸을 때였다. 공기라고는 하나 없는 수면 아래에서 어떻게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커크는 어렴풋이 이 별의 물에 호흡이 가능한 산소가 녹아 있거나, 자신을 휘감은 넝쿨들에 특별한 기능이 있겠거니 생각할 뿐이었다. 넝쿨은 힘없이 늘어진 커크의 허벅지를 자극했고, 커크가 미약하게 움찔거리자 적극적으로 하체를 감아올렸다. 커크는 더이상 견디지 못하고 몸부림쳤다. 그럴수록 줄기는 더욱 강하게 그를 잡아맸다.
가늘게 다가오던 자극이 고통이 되었을 때쯤, 커크는 결국 반항을 포기했다. 눈물은 물에 섞여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